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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벚꽃여행] 혼자의 즐거움3

여름잎 2019. 3. 31. 18:52

- 3월 30일 후쿠오카에서의 마지막 날 

 

소박하면서도 건강한 일본식 조식을 먹고 하카타역의 'REC COFFEE'에 들렀다. 비행기 시간을 늦춘 탓에 생긴 여유다.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세련된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이번 여행의 마지막 페이지를 마음 속으로 그려본다. 가족과, 내지는 친구와 함께한 여행에선 서로를 찍어주기에 바빴는데. 혼자 있으니 발 가는대로 마음 가는대로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어서 좋다. '내 세상'의 드디어 진정한 주인이 된 기분이다. 

 

유명한 독서광 지식인 움베르트 에코는 이런 말을 남겼다. "책은 생명보험이며, 불사를 위한 약간의 선금". 나는 '책'이 들어갈 자리에 '여행'을 넣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여행은 생명보험이며, (월급 통장에서 빠져 나가는) 불사를 위한 약간의 선금". 여행은 삶을 지속시켜 주는 파릇파릇한 생명의 행위이다. 나이가 들수록 실패와 시행착오가 인생에 치명적인 결점을 남기지만 여행길에서만큼은 나이를 얼마나 먹었든 길을 헤매도 된다. 오히려 잘못 들어선 골목길에서 눈부신 광경을 마주하기도 한다. 이리저리 발 닿는 대로 걷다보면 고요함, 너그러움, 그리고 땀이 버무러져 묘한 황홀경에 빠진다. 여행의 맛이다. 

 

길을 헤매도 침착할 수 있는 여유를 항상 (난이도가 좀 높아져도) 장착할 수 있을까 했는데, 이번에 놀라운 경험을 했다. 쇼핑몰에서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에 휴대전화를 분실한 것이다. 이상하게 가슴이 철렁하지가 않았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건 처음이었는데 어쩔 수 없겠구나 싶었다. 다행히 한국어를 잘 하는 직원이 고맙게도 같이 '백방으로' 발로 뛰어준 덕에, 화장실 옆 매장 직원이 내 휴대전화를 보관해주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아찔한 30분, 아, 나 여행 고수가 됐다 싶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의연할 수 있는 마음가짐은 여행에서 심심치 않게 배울 수 있다. 감사했다. 

 


오미야게(여행지에서 가져온 물건 또는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할 때 가지고 가는 물건)을 사들고 비행기에 올라탄다. 유통기한을 고려해 나가사키의 카스텔라, 도쿄의 도쿄바나나, 후쿠오카의 히요코빵을 집어 들었다. 예전엔 왜 이런 데 돈을 쓸까 좀 갸우뚱한 적도 있었는데 남원상 작가의 '프라하의 도쿄바나나'를 읽고 생각이 확 바뀌었다. 

 

“수십 년, 수백 년에 걸쳐 대를 이으며 전통의 맛을 지켜나가는 온고(溫故), 그러면서도 시대 흐름에 맞춰 새로운 상품과 브랜드를 꾸준히 선보여 성장을 거듭하는 지신(知新). ‘일본 오미야게 과자는 왜 매력적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어쩌면 가장 쉽고 기본적인 사자성어 ‘온고지신’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과 우유에 나가사키 카스텔라를 찍어 먹으며 든 생각, 아, 이 책 다시 정독해야겠다. 그리고 여름 휴가 전까지 또 열심히 독서하고 사람들과 지적 대화를 나눠야지. 매일 매일 여행하는 것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살아야지.